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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범죄자가 문화전도사 된 사연 문화∙스포츠 편집부 2021-11-1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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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러다이 둥우(Keledai Dungu) 도서관에서 열린 조촐한 낭독연주회. 미스터 데이(Mr.Day)라는 단체가 주최한 행사(JP/Ivan Darski)
 
까랑 뗌복(KarangTembok)마을은 수라바야에서 최고 우범지역 중 하나다.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어리석은 당나귀’란 뜻의 끌러다이 둥우(Keledai Dungu) 도서관이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이 지역에 희망의 빛을 비추고 있다.
 
저녁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러 펴지면 아스팔트 위에 깔린 빨간 매트위로 하나 둘 달려와 모여드는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 반짝인다. 대개는 영사용 스크린에 밤새도록 계속될 영화상영이 시작될 타이밍이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영화상영이 취소되었고 관리자들 중 한 명인 가트라 누그라하(Gatra Nugraha, 30)가 급히 달려나가 이미 설치되어 있던 스크린과 영상 프로젝터를 거둬 들였다.
 
11월 13일(토) 자카르타포스트와 만난 가트라는 이미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기계는 아직 할부도 다 끝나지 않았다며 프로젝터를 향해 날렵하게 뛰어가던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그렇게 말하자 끌러다이 둥우 도서관의 다른 관리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가트라는 동부자바 수라바야 소재 까랑똄복 마을 빈민들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할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예술집단 미스터데이(Mr. Day)의 공동설립자다.
 
그곳 학령기 아이들이나 성인들은 대부분 학교를 중퇴한 사람들이다. 미스터 데이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마을을 지나는 강둑에 대나무로 방공호 비슷하게 만든 수수한 공간에 ‘어리석은 당나귀’, 즉 끌러다이 둥우라는 도서관을 세웠다.
 
하지만 미스터데이가 처음부터 그런 긍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단체였던 건 아니다. 1990년대엔 동네 양아치들과 범죄자들의 갱 조직이었다.
 
현재 건설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가트라에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한계가 결국 사람들을 범죄세계로 등떠민다는 것을 깨닫던 순간이 있었다. 그 역시 간신히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여동생은 어찌어찌 중학교까지 겨우 마쳤다. 그 마을 어린이들에겐 학교에 간다는 것이 대단한 사치이고 대학진학은 생각할 수도 없는 불가능한 꿈이라고 가트라는 말한다.
 
▲시를 낭독하는 전직 폭력배 가트라 누그라하(GatraNugraha)씨 (JP/Ivan Darski)
 
하지만 가트라는 “가난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멍청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어리석다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냐?”며 자기 고향 마을에서 무지를 퇴치하겠다는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아직도 그가 사는 마을의 적잖은 사람들에게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그는 말한다.
 
범죄에서 예술로
일찍이 가트라는 까랑뗌복 마을에 함께 사는 쁘라하스타 수리야(Prahasta Surya, 35), 기난자르 수크모(Ginanjar Sukmo, 32) 등 두 명의 형들과 함께 미스터데이를 조직했다. 자신들이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걸으며 생존을 위해 범죄의 세계로 들어서려는 수많은 마을 아이들을 보고 뭔가 유익한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트라와 그의 형 쁘라하스타는 10년 이상 강도질이 직업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직업이 범죄자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이웃과 친구들도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매한가지였으므로 그들 사는 곳이 우범지대 취급을 받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는 거지? “언젠가부터 그들에게 현타가 찾아왔다.
 
방황 끝에 범죄자의 길에서 돌아선 이들은 2017년부터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수입의 일정부분을 떼어 대량으로 책을 사들였다. 그러다 보니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힘을 보태 주었다. 그런 지원자들 중 짝 알리(Cak Ali)라는 작은 상점 주인이 있는데 그가 지금 끌러다이 둥우 도서관이 들어선 손바닥 만한 자기 땅을 내어준 사람이다.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사는 그들에게 뭔가 시작하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는데 이를 알고 이자를 전제로 돈을 빌리는 것이 이슬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목소리 높이는 마을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며 마찰을 빚기도 했다. “돈을 빌리는 것은 고리대금업을 인정하는 행위이고 종교적으로 금지된 거라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웃들이 어려움 속에 있고 우리들 가운데 ‘어리석음’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커져 가는 것을 알면서도 넋 놓고 놔두는 것과 좋을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 어느 쪽이 더 종교적으로 잘못된 것일까요?” 쁘라하스타는 되물었다.
 
쁘라하스타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교과서조차 구할 수 없었지만 시인인 아버지가 그들에게 글과 독서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고 회상했다.
 
가트라와 쁘라하스타는 도서관이 세워지기 전엔 책을 싣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며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했고 15분 이상 책을 읽은 아이들에게는 사탕이나 과자를 선물로 주었다. 워낙 가난한 마을이라 500루피아(약 40원)짜리 과자 한 봉지에도 아이들은 너무나 기뻐했고 가트라와 쁘라하스타는 그런 모습에 전율을 느끼기까지 했다.
 
책을 구하러 다니는 펑크 밴드
처음엔 미스터데이 설립자들 모두에게 찍혀 있던 범죄자 출신이란 낙인이 부끄러웠지만 점차 더 많은 마을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이 그들의 활동을 돕기 시작했고 책을 대여해 주는 것은 물론 글쓰기, 음악, 디자인 등의 레슨 프로그램을 여는 데에 참여해 주었다.
 
가트라는 지역사회 젊은이들과 함께 ‘미친 듯이 여기저기’란 뜻으로 해석되기 쉬운 그람비양 에단(Grambyang Edan)이란 이름의 펑크 록그룹도 만들었다. 여기엔 원하는 사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 밴드 이름은 원래 “나쁜 기도습관 교정운동’Gerakan Sembahyang Elek Didandani)이란 의외의 원문을 줄인 말이다.
 
그들은 수라바야 곳곳의 이벤트에서 연주했고 가트라는 중간중간에 아버지의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행사에서 연주한 수고비는 돈이 아니라 그들이 끌러다이둥우 도서관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책으로 받는다. 밴드를 하는 목적이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스터데이의 구성원들은 그람비양에단 밴드 외에도 겜볼로 로소(Gembolo Roso)라는 극장식 클럽의 무대도 꾸민다. 이 무대에서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연극을 공연한다.
 
그간 여러 정당들이 끌러다이둥우와 미스터데이를 자기들 선거 캠페인에 사용하려 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끌러다이둥우와 미스터데이에 대해 알고 그들이 도움이 필요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손을 뻗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것을 희망했다. 변화란 가장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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