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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자바 땅에 이슬람을 전파한 아홉 명의 초인, 왈리 송오 이야기 사회∙종교 편집부 2021-04-1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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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왈리 송오(Wali Songo) (CNN Indonesia/Adhi Wicaksono)
 
라마단 금식월을 맞아 인도네시아에 처음 이슬람을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 왈리 송오 이야기를 잠시 돌아보자.
 
‘아홉 명의 수호자’라는 뜻의 왈리 송오(Wali Songo)는 15~16세기 자바 땅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대단한 카리스마를 발했고 때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초인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왈리 송오 이야기는 학교 정규수업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아니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에 가깝다. 그들은 자바 땅에 이슬람을 전파했을 뿐 아니라 정통 이슬람 교리와 이 땅에 깃든 조상들의 문화를 혼합해 서로 어우러지도록 한 중요한 인물들이다.
 
국립이슬람대학교(UIN) 샤리프 이다야툴라 자카르타(SyarifH idayatullah Jakarta)의 자잣 부르하누딘(Jajat Burhanuddin)이슬람 문명사 석좌교수는 왈리 송오의 업적이 많은 시대에 걸쳐 구전되어 내려온 결과 인도네시아 사회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이미지를 통해 그들에게 수호자라는 위상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31일 CNN인도네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상 이슬람 사회에서는 누군가를 왈리(수호자)나 울라마(고위 이슬람학자)로 임명할 자격을 갖춘 단일 기관이나 단체는 없다. 그런 지위는 전체 사회의 총의를 얻어야만 한다. 그러니 그들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왈리 송오로 인정받은 셈이다. 처음부터 그들은 초인으로 그려졌고 그들과 관련해 생겨난 많은 전설 속에 등장하면서 더욱 입체화 되었다.”고 말했다.
 
자잣은 대중들 속에서 왈리 송오라는 단어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략 울라마들이 대두되던 시대, 혹은 이슬람이 대중에 좀 더 깊숙이 확산된 이후일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알기로 이 단어가 많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십 년 전 정도입니다.”
 
아구스 수뇨토(Agus Sunyoto)는 자신의 저서 <아틀라스 왈리송오(Atlas Walisongo )>(2017)에서 시무(Simuh)(1986)를 인용하며 왈리 송오가 한때 자바 땅에 번창했던 힌두-불교 왕국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자바의 민중들은 우주의 각 방위를 수호하는 신들이 이 세상을 관리하고 보호한다고 믿었다.
 
힌두-불교 세계관엔 여덟 방위의 신들과 중앙을 지키는 신이 있는데 위슈누(북쪽), 이스와라(동쪽 바다), 삼부(동쪽), 마헤스와라(동남쪽), 브라흐마(남쪽), 루드라(서남쪽), 마하데와(서쪽), 짱까라(서쪽 바다), 시바(중앙)가 그들이다. 이러한 힌두 세계관 속의 개념이 왈리송오의 전설에 채택된 것이라고 아구스는 주장한다.
 
여러가지 버전
왈리사나 경전(Kitab Walisana)에는 왈리송오 여덟 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수난 암뻴(Sunan Ampel), 수난 구눙자티(Sunan GunungJati), 수난 응우둥(Sunan Ngudung), 기리 가자(Giri Gajah)의 수난 기리(Sunan Giri), 보낭(Bonang)의 수난 마크둠(Sunan Makdum), 마자궁(Majagung)의 수난 알림(Sunan 'Alim), 드라잣(Drajat)의 수난 마흐무드(Sunan Mahmud) 그리고 수난 깔리 자가(Sunan Kali Jaga)다.
 
한편 찌레본 역사서(Babad Cirebon)에 기록된 왈리송오는 아홉 명으로 수난 보낭, 수난 기리 가자,수난꾸두스, 수난 깔리자가, 샤이크마자궁(Syaikh Majagung), 마울라나 마그리비(Maulana Maghribi), 샤이크 벤똥(Syaikh Bentong), 샤이크 러마 아방(Syaikh Lemah Abang), 그리고 수난 구눙자티 뿌르바(Sunan, GunungJati Purba)다.
 
다른 버전에는 13명까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샤이크 마울라나 말릭 이브라힘(Syaikh Maulana Malik Ibrahim), 샤이크 쥬마딜 꾸르바(Syaikh Jumadil Kubra), 샤이크 마울라나 마그리비(Syaikh Maulana Maghribi) 같이 좀 다른 이름들도 등장하며 사람들은 이들 역시 왈리송오의 일원이라 여긴다. 물론 왈리송오의 숫자가 자꾸 바뀌어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아구스 헤르마완(Agus Hermawan)과 로꼬 빠뜨리아 자티(Roko Patria Jati)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연구(Studi Islam Nusantara)>(2019)라는 출간물에서 왈리송오 시대가 인도네시아 지역 힌두-불교 왕국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왈리송오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자바 땅에서 벌어진 이슬람의 전파와 이슬람 왕국의 창건에 대한 상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는 찌레본 술탄국(1430–1666), 드막술탄국(1500–1550), 반뜬 술탄국(1524–1813) 또는 족자 술탄국이나 수라카르타 수난국의 초창기와 맞물려 있다.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에서 평화롭게 전파되었다. 왈리송오는 이른 바 문화적응, 즉 새로운 종교와 기존 문화의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융합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수피즘적인 요소를 소개했다. (수피즘: 정통이슬람과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신의 초월성과 사랑을 찬양하면서도 주변문화의 샤머니즘, 범신론 등이 혼합된 형태의 종교– 역주) 이러한 모습은 술탄아궁의<스랏 사스트라 근딩(Serat Sastra Gending)>, 함자 판수리(Hamzah Fansuri)의 <선상의 서(Syair Perahu)>와 같은 다양한 문학작품에서 시와 산문으로 묘사되었다.
 
이외에도 왈리송오는 기숙사나 쁘산트렌 기숙학교 같은 것을 짓는 방식으로도 선교했다고 전한다.
 
출처: CNN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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