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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조선인 양칠성은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현지서 집중 조명 사회∙종교 편집부 2019-08-1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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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단체 세미나 개최…11월 '양칠성 도로' 명명 확실시
"인니 위해 싸웠지, 한국독립 위해 싸운 것 아냐" 시각차 존재
 
 
인도네시아 역사연구단체인 '히스또리까'(Historika)가 16일 오후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에서 조선인 양칠성을 집중 조명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한국 사람들은 양칠성을 잘 모르고, 일부는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를 '독립 영웅'으로 널리 알리는 운동이 진행 중이다.
 
이날 세미나에는 히스또리까 회원과 학생 등 300명 가까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히스또리까 회장 아둘 바시드는 "네덜란드와 독립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는데 그 중에는 한국인 양칠성도 있었다"며 "젊은 세대는 앞날을 위해서라도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티뉴 UI 한국어학과 교수와 누르 아이니 스띠아와띠 박사는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했던 시절에 한국인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양칠성이 어떤 스토리를 가졌는지 설명했다.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1942년 점령했다가 1945년 물러가자, 재점령하려는 네덜란드와 4년간 독립투쟁을 벌였다.
 
네덜란드군은 휴전이 발효되기 직전인 1949년 8월 10일 자바섬 서부 가룻(Garut)에서 인니 독립군 유격대 소속 포로들을 처형했는데, 그중 한 명이 양칠성이었다.
 
1919년생인 양칠성은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1942년 인도네시아에 왔고,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에는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합류해 '폭탄 전문가'로서 네덜란드군에 대항했다.
 
전북 완주 출신의 양칠성은 '야나카와 시치세이'라는 일본 이름과 현지 방언으로 찬란한 빛을 뜻하는 '꼬마루딘'이라는 현지 이름을 썼다. 이름이 세 개였던 셈이다.
 
양칠성은 외국인 독립영웅으로 추서돼 유해가 1975년 가룻 영웅묘지로 이장됐고, 1995년 8월에서야 묘비의 일본명이 한글명으로 바뀌었다.
 
그가 항일투쟁을 하지 않았고, 네덜란드군에 처형되기 직전 일본인들과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한국에서는 그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하지만, '천황폐하 만세'가 아니라 독립을 뜻하는 '므르데까'를 외쳤다는 설도 전해져 양칠성의 마지막 순간은 불분명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등 양칠성의 행적을 추적한 저널리스트 헨디 조는 이날 세미나에서 "우리는 독립 후 우리를 도왔던 한국인을 챙기지 않고,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본군에서 탈출한 수십 명이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합류했는데 그중에 양칠성(꼬마르딘)과 국재만(스바르디 조) 등 여러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헨디 조는 독립전쟁 상황을 아는 생존자 5명과 인터뷰했다며 "가룻의 나이 든 분들은 아직도 양칠성과 수바르 조의 전설적 이야기를 한다"며 "양칠성은 염소에 폭탄을 매달아 네덜란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 교민 배동선 작가는 "양칠성은 인도네시아 영웅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영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며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웠지, 한국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고 일본에 대한 감정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누구나 일본에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잃은 기억이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점령했지만,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입장이다.
 
배 작가는 "이처럼 시각의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양칠성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연결점이자 한국과 일본의 연결점"이라고 강조했다.
 
히스또리까는 '영웅의 날'인 11월 10일에 '잘란 양칠성'(양칠성 도로) 명명식을 하도록 추진, 실행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앞서 1부 행사로는 국가장학금을 받고 한국에서 공부한 동문이 한국 거주 경험담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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