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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 문화 연구원 제9회 문학상 학생부 대상 / 하루 / 안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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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766회 작성일 2018-10-01 16:33

본문

< 제9회 문학상 학생부 대상 주ASEAN대사상 >
 
하루
 
안세인 JIKS 11학년
 
새벽 4시 30분, 머스짓 코란 소리가 깊은 잠을 흔든다.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다는 뿌듯함에 다시 달콤한 잠에 빠져 들쯤 일어나라는 엄마의 목소리는 머스짓의 확성기보다 파워풀 하고 생생하다. 이땐 포근한 이불을 재빠르게 포기하는 게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걸 안다. 눈꺼풀과 몸은 너무나 무거운데 식탁에 차려지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금세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맛있는 된장찌개와 노릇하게 구워진 조기, 들기름을 듬뿍 넣어 빠삭하게 구운 파래김
아침이다 !! 난 이 시간이 참 좋다.
약간은 긴장되어 기분 좋게 설레고 밤새 뇌와 심장이 깨끗해진 느낌!
아침 시간은 늘 그렇듯 빠르게 지나간다. 전투적으로 밥을 먹은 후 엄마에게 감사와 애교도 챙겨 드리고 등교를 위해 책가방 도시락 노트북 빌린 책, 담요까지 한 아름 장착하고 집을 나서면 깜보자의 달콤하고 향긋한 꽃향기가 어느새 먼저 나와 배웅한다.
 
로비 계단 아래로 내려서면 빛의 속도로 다가서는 회색 기장이 서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1분도 늦지 않는 기사 아저씨가 매번 고마운 순간이다.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가면 지구상의 오토바이는 모두 자카르타로 몰린 듯 어마어마한 오토바이 행렬이 가장 먼저 보인다.
 

열대지방임에도 가죽점퍼에 머플러 마스크로 멋지게 단장한 사람들, 아내와 아기까지 태우고 신호를 기다리는 젊은 아빠는 작은 오토바이에 3명을 태우고도 아주 편안해 보인다. 불안한 건 그것을 보는 나만의 몫인가 보다. 급정거는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위태로워 보여 애써 외면한다. 요새 부쩍 많아진 연두색 고젝 조끼를 입은 기사들도 서둘러 어디론가 달린다.
 
아파트 앞 첫 신호가 바뀌고 습관처럼 창문을 내리면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야자나무 위로 눈부시게 파란 하늘은 산신령이 살 거 같은 뭉게구름을 안고 따뜻한 햇살을 차 안까지 보내준다. 어느새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기사 아저씨는 매표소 직원과 반가운 인사를 한다.

늘 느끼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금세 친구가 되고 마음이 순하고 참 따뜻한 거 같다. 이때쯤 센스 있는 우리 아저씨 클래식 음악을 적당한 볼륨으로 틀어주신다. 순서처럼 찾아드는 꿀잠은 아무것도 방해받지 않는 행복한 선물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자동차가 비포장 골목길을 들어서며 덜컹거리는 소리에 짧은 단잠을 깨고 창밖을 본다. 신기하게 매번 같은 장소에서 눈을 뜬다. 먼지가 가득한 골목엔 숭숭 뚫리고 깨진 벽 위에 화려하게 채색된 그림과 멋지게 그려진 낙서들이 보인다. 그 앞을 지나면 낮은 지붕의 구멍가게에 줄줄이 커피와 언젠가 먹어보리라 생각했던 불량식품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가끔 나타나는 비쩍 마른 강아지도 반갑다. 저 강아지를 배부르게 먹이고 싶단 생각을 볼 때마다 한다.
 
 
어린 아기를 품에 안은 여자아이도 자주 보인다. 작은 몸집에 야무지게 아기를 안고 있는걸 보며 학교엔 언제 가려나 매번 걱정이 스친다. 그 앞으로 과자 껍질과 까만 봉지가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낡은 흰색 대문 안에 커다란 꽃나무가 있는 집을 지나고 나면 붉은색 꽃들로 낮은 울타리를 만든 예쁜 정원이 있는 집이 보인다. 그 앞엔 러닝만 입은 아저씨가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고 할머니와 아줌마는 머리와 옆구리에 대나무 바구니를 이고 지고 분주히 걷는다. 언젠가 저 바구니 안을 본 적이 있다. 인도네시안들 이 즐겨 마시는 건강 음료인데 쌀, 강황, 생강이 들어간 시큼씁쓸하지만, 몸에 좋은 자무(Jamu)다. 모르고 마셨다가 뱉지도 넘기지도 못해 곤란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우리로 치면 홍삼 엑기스처럼 몸에 좋은 국민 음료이다. 빈 아쿠아 병이 잔뜩 쌓여있는 슈퍼까지 지나면 곧 학교 정문이 도착한다. 왠지 학교에서 보는 하늘은 더 높고 훨씬 커 보인다. 나만 그런가?
 
 
교정에 들어서면 아침에만 맡을 수 있는 기분 좋은 냄새가 있다. 달콤한 흙냄새 새벽이슬을 머금은 나뭇잎과 신선한 풀냄새 일 년 내내 피는 꽃나무 향내가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다. 식당 앞에서 우리를 반기시는 교장 선생님이 보일 때쯤 어김없이 예비 종이 울린다.
이제 뛰어야 할 차례다.
교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창가엔 언제나 햇빛이 먼저와 환하게 머물러있다.
 
첫 교시는 수학 시간, 단정하고 예쁘지만 세심 잔소리 수학쌤 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짝 다인 이가 외친다. "아~~배고프다." 이 말은 반 전체로 전염되어 우린 또 매점을 향해 달린다.
10분을 완벽하고 의미 있게 보낸 후 2교시는 화학 시간, 언제나 편하고 따스한 에너지를 주는 화학 선생님의 수업도 끝나면 달그락달그락 도시락을 꺼내어 먹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커지는 웅성웅성 소리 후 순식간에 우린 도시락도 해치운다. 김치 볶음부터 달걀부침 오징어채며 별별 냄새가 진동하지만, 식사를 다 하고도 쉬는 시간 5분 남았다. 역시 우린 타고난 먹방의 신이다.
 
이제 3교시, 어제 늦도록 영화를 봤더니 기운이 없고 몽롱하다 정말 잘 참은 줄 알았는데 노트에 침이 흥건하다. 빠르게 3교시와 4교시가 끝나면 점심시간 난 빛의 속도로 숙제를 한다. 이 짧은 시간에 단어 시험준비도 하다니 엄마는 천재를 나신 게 분명하다. 오후 수업은 오전보다 빠르다는 훌륭한 장점이 있다.
 
종례가 끝나고 교실 문가에 애들이 수군거린다. 교실 밖에 J가 있다. 인도네시아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 태어난 잘생김의 정석 같은 그 아이는 언제나 스마트하고 스윗한 미소로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이걸 전문 용어로 후광이라 하던가? 아무튼 난 그 빛을 따라 싫다는 짝꿍의 손을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자며 급하게 그 앞을 지난다. 짧은 만남, 긴 행복이 느껴지는 순간 내 짝꿍은 야속하게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운동도 공부도 악기도 뭐하나 못하는 게 없으니 나랑은 참 다르지만, 아무튼 나를 보는 그의 눈빛만은 반갑다 한다. 나만의 착각이라며 짝꿍은 쥐어박는 소리를 한다. 역시 눈치는 없고 머리만 좋은 나의 베프답다. 착각이 아닐 거라 믿으며 같은 반이 한 번도 안 된 게 애틋한 운명인가 싶기도 하고 무슨 슬픈 운명이 3년 내내 한마디 말도 못 해 볼까 하는 상상 속 진도가 나가면 세원 이와 승희의 합창 소리가 들린다. "배고파 !!"
 
수업 마치고 빨리 오란 엄마의 커다란 얼굴을 애써 외면하고 교문 앞 빠당 집으로 순간이동 하면 깨끗이 닦아놓은 창문 안엔 아얌고렝(Ayam Goreng), 른당(Rendang), 각종 튀김들과 숯불로 구워낸 꼬치(Sate)와 생선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삼블뜨라시(Sambal Terasi)를 뜨거운 흰밥에 닭튀김과 함께 먹는 맛은 언제나 진리이고 천국의 맛이다. 아마 한국에 있다면 떡볶이나 김밥 어묵을 파는 분식점에 가겠지만 빠당은 훨씬 영양가 있고 선택의 폭이 넓고 다양하다.
 
꼭 일찍 와야 한다는 엄마 음성은 오물오물 냠냠 일탈의 짜릿함에 가려지고 배가 부른 후에야 두려움에 몸이 빨라진다.
“Tolong Cepat ke rumah pak!!” (“빨리 집으로 가주세요!!”)
 
아침에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 그새 활짝 핀 나팔꽃과 붉은 샐비어가 바람에 웃는다. 햇빛이 눈부셔 자동차 커튼을 닫으면 가장자리로 삐져 들어 온 햇살이 반갑고 아늑하다.
달콤한 잠에 빠져드는 순간,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 선생님이 먼저와 계신다. 매번 먼저 도착한다며 눈을 흘기는 그녀는 혼을 내는 건지 놀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신다. "너무 배가 고파서“ 난 미안한 듯 살짝 시선을 내리깔며 최대한 불쌍하게 말한다. 그녀의 눈은 금세 따뜻해지고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내 말을 믿기로 했나보다. 나의 연출에 오늘도 무사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상대를 배려하며 기다려주고 잘 웃고 축복해 주기를 좋아한다. 난 자카르타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니며 인도네시아 선생님과 도우미 아줌마 기사 아저씨와도 허물없이 지낸다. 그들은 서로 험담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실수도 너그럽게 넘기는 좋은 품성 또한 갖고 있다. 난 최선을 다하며 책임과 신의를 중요시하는 한국 사람이면서 따뜻하고 여유로운 인도네시아의 정서도 함께 갖고 있다.
 
먼 훗날 나의 어떤 순간에도 따뜻하고 명예롭게 기억될 이름 인도네시아!!
이제 햇빛은 사라지고 축복 된 나의 하루도 곱게 접히는 시간이다. 내게 허락된 행복한 일상과 건강에 감사하며 소중한 이 마음을 잃지 않고 살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 대상 (주ASEAN대사상) 안세인 수상소감

“하루”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인도네시아에서 17살의 나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훗날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도 웃으며 즐거웠던 순간들, 순수한 꿈과 열정이 가득했던 이 시간들은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씩 열어 보고픈 마음의 보석상자가 될 것입니다. 나의 작은 일상들을 이렇게 글로 담아두니 신기하게 내 마음도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처음엔 인도네시아 이야기를 역사적 해석과 함께 멋지게 쓰고 싶었지만, 오히려 한 줄도 쓰기 어려워 오랜 시간 고민하다 누군가에게 알려진 사실을 학문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만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니 훨씬 빠르게 써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중심에 소중한 내가 있고 우리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을 준비하며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친근하게 느껴진 것도 큰 보람으로 다가 왔습니다.
이제 얼마 후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언젠가는 사랑하는 내 고향 인도네시아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평범한 저의 하루를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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