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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뎅기열, 치료제가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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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505회 작성일 2018-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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뎅기열, 치료제가 없다니
 
 
링거와 주사가 78회였다. 뎅기열(Demam Berdarah)로 병원 침대에 누운 6박 7일 동안이다. 24시간 쉴 새가 없었다. 혈소판 낮추기, 열 내리기, 치료와 예방을 위해 갖가지 약이 손등 혈관을 통해 몸으로 마구 파고들었다. 식전과 후로 먹은 약은 별도니 가히 내 몸은 약이 점령한 시간이었다.
 
시작은 몸살이려니 싶었다. 웬 걸 시간이 갈수록 전에 없는 고통이었다. 뼈와 근육 살이 다 아팠다. 온 밤을 신음과 뒤척임으로 채웠다. 날이 밝았다. 병세가 더 심해졌다. 한발 먼저 병세를 호소하던 아내도 더욱 심해졌다. 병원행을 서둘렀다. 모든 게 귀찮음, 그냥 자고 싶은 생각을 떨쳐야 했다. 혼미한 중에도 바람결인듯 스치는 정신 차려야 한다는 의식을 놓지 말야야 했다. 떨쳐 일어나야 했다.
 
토요일 휴일, 급히 기사를 불렀다. 병원 선택이 중요하다. 차에 오르며 아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얼마 전 뎅기열로 고생한 이웃 부부에게다.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이웃은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다. 병원행에 동승하겠다고 했다. 사양할 틈도 없이 길목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병원 로비에서 응급실 휠체어에 탄 기억이 희미했다. 응급실 침대에 누운 지 얼마나 지났을까? 몸이 흔들렸다. 이웃이 나와 아내의 침대를 오가며 깨웠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생수병을 내밀었다. 그 사이 베개가 축축했다. 상체부분 침대 시트도 땀으로 범벅이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다는데 기억이 없다. 1시간 이상 반죽음 상태였던가 보다. 손등에는 이미 링거와 주사약을 투여할 장치가 부착돼 있다.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웃의 예상대로 뎅기열이다.
 
 
 
 
 
 
입원은 당연한 순서였다. 입원? 순간에도 입원은 거부감이 인다. 집으로 가고 싶다. 집 침대에 가서 편히 드러누워 한잠 푹 자고 나면 회복되겠지 싶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보다. 경험자인 이웃이 펄쩍 뛴다. 의사는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단 위험한 상태에 직면해도 책임 못 진다는 태도다.
 
2인 병실에 나란히 누웠다. 이 무슨 얄궂은 꼴인가. 부부가 같은 병실에서 같은 병세로 나란히 누워 앓는 소리로 화음을 맞추다니. 언 듯 엄청 사이좋은 부부 같다. 하지만 이거 최악이다. 누군가 한 사람은 멀쩡해야 병간호를 할 것 아닌가. 함께 아픈 부부의 이 암담함이라니.
 
아! 세상 누구도 이미 얻은 병은 돈을 아무리 붙여주고도 팔 수 없어라. 대신 아파 줄 사람마저 없어라.
 
부부가 나란히 누운 병실의 밤은 그냥 무정도 유정도 아니더이다. 간호사들의 발걸음만 잦더이다. 링거액은 똑똑똑 끊임없이 손등을 시리게 하는데, 또 다른 약 줄 이어 내 피에 섞이더이다. 물 많이 먹어라, 뭐든 많이 먹어라 권고가 형벌이더이다. 정작 먹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더이다. 약물은 끊임없이 몸 안에 폭설처럼 쌓이는데 병세는 왜 그렇게 무거워져만 가던지.
 
때로 오한이 들다가 갑자기 땀이 쏟아지기도 했다. 도대체 뎅기열이 무엇인가? 더러 들었던 알만한 병명 아닌가? 그러나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알 필요가 있던 명사도 아니다. 입에선 신음 끊이지 않아도 스마트 폰을 켜야 했다. 뎅기열을 검색했다. 다양한 정보가 많았다. 알 듯 그러나 생소한 병, 어지간히 이해하고 나니 안심도 걱정도 딱 그만큼씩 뒤섞인다. 일단 입원이 바른 순서였음은 확실했다.
 
치료제가 없다고 했다. 상황에 따라 대처를 하며 그냥 일정 기간을 견뎌야 한다고 했다. 병상의 환자를 참 허탈하게 하는 현실이었다. 내가 늘 시달리는 위축성 설염도 그렇더니, ‘재수 없으면 2백 살 산다’라는 시대에 웬 치료제가 없는 병세는 또 이리 많단 말인가?
 
아! 세상의 모든 나눔은 아름다움 아니던가? 그런데 모기 이 못된 녀석과의 피를 나눔은 나눔이 아니었어라. 처절한 빼앗김이었어라.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어라. 살이 아팠다 뼈가 아팠다 그리고 근육이 아팠다.
 
“모기 네 이놈! 허락도 없이 피를 덜어간 것도 그렇거니와 어찌 실핏줄까지 이리 고통을 준단 말이냐. 반정신을 빼앗는 이렇게 아픈 병증 살다 첨이니라. 너를 혐오하지 않을 사람 세상 어디에 있을까? 산마을에서 24시간 창문을 개방하고 사는 자연 좀 즐기기로서니 네 어찌 그 값을 이리 큰 고통으로 덮어씌운단 말인가. 조그맣고 연약한, 비행 솜씨도 그리 뛰어나지도 못한 네 녀석이 영화에서나 보는 검은 복장의 저승사자 모습일 줄이야.”
 
“이제 인도네시아 사람 다 됐군. 이제부터 사는 맛 좀 들겠네.”
 
씁쓸한 농담이었다. 감수하지 않을 수도 없는 조크였다. 보고 느끼고 즐길 것도 많은 나라에서 뎅기열 맛 좀 안 보면 어때서. 예방법 중 상책이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란다. 이런 쉽고도 난해한 상책이 또 있으랴? 치료제가 없다는 병이 예방법도 참 빈약하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때마다 중얼거리는 “인샬라!” 딱 그 말에 어울린다고 할 수밖에.
 
 
한국에는 아직까지 뎅기열에 관한 대처가 인도네시아만 못하다고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뎅기열이 발생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리라. 뎅기열에 관한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인도네시아 병원은 역시 달랐다. 손 빠르게 체계적으로 대응했다. 의사나 간호사들도 매우 친절했다.
 
그러나 당부한다. 부디 어느 누구도 이 고통을 피하시기를 부탁한다.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후휴증이 만만찮다. 다 아시듯이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는 입장에서 병원 매상 올리기에 봉 잡히는 외국인 될 필요도 없잖은가. 허나 만약 급성 발열에 온몸에 통증이 스멀스멀 파고든다면 그땐 병원행을 서두르시라. 서둘러 가까운 큰 병원으로 달려가실 것을 권한다.
 
무력감 어찌할 수 없던 여러 날이 지났다. 가족보다 더 정성스럽게 보살펴준 이웃 김사장 부부께는 큰 빚을 졌다. 원근에서 병실을 오간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쳤다. 덕분에 오늘 아침 맑은 햇살이 반갑기 그지없다. 참 징허게 아파본 사람의 기도다. 세상 모든 이의 건강하심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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