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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서예가의 골프 만담 6] 골프, 필드의 여백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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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036회 작성일 201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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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의 골프 만담 6]
 
골프, 필드의 여백 즐기기
 
▲ 살락산(2,216)이 바라다 보이는 Rainbow C.C
스톤힐 코스 2번 홀 그린에서
 
“필드를 최대한 잘 활용해야지 안 그래? 골프장을 왜 그렇게 드넓게 조성했겠어? 넓게 사용하라는 거 아냐? 푸른 잔디는 또 얼마나 예뻐. 어제 저녁 축구 경기를 시청했는데, 해설자가 반복해서 지적하는 것이 뭔 줄 알아? 넓은 공간 활용이야.
 
농구 경기를 시청해봐. 해설가가 목소리 톤을 높이는 대목이 어딘지 알아? 양 사이드를 휘젓지 못할 때야. 게임을 원활하게 풀어내려면 중앙 돌파만 고집하지 말라는 거지. 그라운드를 폭넓게 쓰는 시야는 모든 구기 종목의 진리야. 골프도 구기 종목 맞잖아?”
 
B 씨의 열변이다. 열변도 열변 나름이다. 논리가 참 얄궂다. 듣다 못한 동반자가 받아쳤다. “그렇지. 야구 감독은 투수에게 계속해서 스트라이크존을 최대한 넓게 구석구석 활용하라 지시하겠지. 근데 말이야 B형, 당신이 야구장 투수야? 축구 선수야? 농구 선수냐고? 아마추어 골퍼잖아? 오랜 구력에도 비기너 티를 못 벗는. 무슨 구석 활용론이야?”
 
B 씨의 핸디캡은 18이다. 20이 어울리는 실력이다. 그런데 자신이 우겨 끌어내렸다. 그 뒤 10년째 변동이 없다. 그는 핸디캡 18에 대해서 역설이 길다. 더 바랄 게 없는 핸디캡이라나 뭐라나. 그러니까 핸디캡 18이면 이른바 꽃 핸디캡이란 주장이다. 대접받고 대접하는데 가장 무난한 핸디캡이라는 거다. 골프 홀이 18이니 딱 어울리는 숫자거니와 열여덟이면 유쾌함 상큼함 뭐 두루 뉘앙스 좋지 않느냐는 거다.
 
▲ ▼ ▼ 자카르타 남부 도심의 멋진 여백
Pondok Indah  C.C
 
 
 
가다가 언더를 치면 정말 대견하다고 축하해준다고 했다. 백 타 언저리 스코어에도 “18핸디캡이 그렇지 뭐.” 한다는 거다. 제대로 된 18핸디캡 골퍼가 들으면 화낼 말이다. 그러니까 18핸디캡에 대한 분석은 순전히 성격 좋은 그의 자의적 해석이다. 오직 즐기자 주의의 그의 분석이다. 하긴 이리 즐겨야지 싶다. 한 타에 거액이 오가는 프로들도 즐기는 것이 대세 아닌가. 각자 핸디캡을 안고 즐기는 것이 골프다. 핸디캡이 낮으면 낮은 만큼 높으면 높은 데로 그 나름 플레이를 즐기는 것이 정답이리라.
 
그리 치면 오히려 로우핸디 실력자들이 더 즐기지 못한다. 대게 핸디가 낮으면 낮을수록 자기 핸디캡을 고수하기 위해 노심초사다. 승부에 관한 집착도 더 강하다. 스코어가 나쁘면 19홀까지 그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경우도 로우핸디가 더 많다. 하이핸디캡 동반자에게 뒤지면 자존심 상해한다. 승부 세계의 냉정함 그런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뭔 소리야? 나도 라운딩 열 번 하면 한 번쯤 내 핸디 마크하잖아.”
 
B 씨의 항의다. 그는 자기 핸디캡을 하향 조정하겠다고 하면 펄쩍 뛴다. 그를 위하는 동반자들 의견에 본인이 반대다. 아마추어 골퍼들 핸디캡에 관한 흥미로운 모순이 있다. 평소엔 대게 잘 친 스코어를 들춘다. 슬며시 자랑이다. 그런데 작은 내기라도 하는 경우 첫 홀 티샷을 날리기 전부터 신경전을 벌인다. 묻지도 않은데 라운딩 한지 오래됐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엄살을 피운다. 최근에 그르친 게임 스코어도 들춘다. 어떤 방법으로든 핸디캡 보상을 받자는 의미다. 물론 의도대로 되는 경우 거의 없다.
 
B 씨는 그게 아니다. 늘 자신만만이다. 그런데 나이 50대 내내 90타를 다반사로 넘기더니 60을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시간이 가고 라운딩은 계속 되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나이 더 들었다고 줄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그는 핸디 대비 언더를 친 적이 거의 없다. 내기에 지는 일이 비일비재다. 동반자들은 “참 훌륭한 코플레이어”라고 놀린다. 그러나 본인은 관심 없다. 그냥 즐길 뿐이다.
 
그의 라운딩? 모범이다. 늘 유쾌하다. 동반자를 거슬리는 언행도 없다. 샷을 대충 날리지도 않는다. 한 타 한 타 진지하다. 어느 모로 보나 나무랄 데 없는 동반자다. 그가 인기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게임에 져서 상대방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하지만, 동반자에 관한 배려도 아무나 따를 수 없는 수준이다. 그는 플레이 때마다 공 박스, 아니면 장갑을 준비해 라운딩 기념이라고 나눠 준다. 한국에 다녀올 때면 토시나 티 등 라운딩에 필요한 정성이 깃든 크고 작은 선물을 잊지 않는다.
 
“B형 고맙긴 한데 이런 거 준비하고 신경 쓸 시간 있으면 연습이나 좀 하시지? 이 거 받아서 미안하고, 게임에 이기니 더 미안하단 말이야. 그렇다고 져 줄 수도 없고~~”
 
그래도 그는 늘 너털웃음이다. 그는 그냥 툭 트인 자연 공간을 누비는 것이 무한 즐거움이다. 함께 즐기는 사람들을 무한 사랑한다. 더불어 귀한 시간 즐기는데 스코어가 무슨 대수냐는 거다. 골프에 관한한 이리 맘 넓은 플레이어 둘도 찾기 어려울 거다.
 
▲ ▼ ▼ 땅그랑 리뽀 까라와찌 지역
도심 속 아름다운 여백 Imperial C.C
 
 
   
각설, 골프 게임은 그의 말처럼 페어웨이를 넓게 활용해 좋을 게 없다. 그린도 마찬 가지다. 가급적 페어웨이 중앙과 홀컵 가까운 곳으로 보내야 한다. 더러 골프백에 꽂힌 클럽을 고루 사용토록 설계된 골프장이 잘 설계된 골프장이라 한다. 그러나 같은 골프장이라 하더라도 클럽 선택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르니 이 또한 빗나간 이론이다.
 
골프는 양궁이나 사격과 닮았다. 공간은 넓되 활용 공간은 적어야 한다. 샷도 간결할수록 좋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 활용은 서예와 골프가 닮은 점이 아주 많다. 활용할 공간은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되 그렇지 않은 공간은 그 자체로 존재케 하는 것이다. 즉 여백 운용의 효율성이다. 여백은 버려진 미지가 아니다. 매우 중요한 숨통을 틔우는 공간이다.
 
서예로 설명하는 것이 더 쉬울 듯하다. 서예는 선의 예술이다. 선을 통해서 정감을 드러낸다. 선을 통해 공간을 구분 짓는다. 그리고 선을 통해 문자를 읽는다. 선이 그어지면 동시에 두 가지 공간이 생긴다. 직접 공간과 간접 공간이다. 직접 공간이란 글자 안 공간이다. 글자를 완성하는 획과 획 사이다. 골퍼가 홀컵을 향해 가는 동안 활용하는 코스 매니지먼트 공간에 해당된다.
 
다음 간접 공간이다. 이 공간은 글자 상하 틈이며 좌우 줄 사이다. 곧 여백이다. 이 여백은 글자가 지닌 내부 공간보다 작품 전체를 도드라지게 한다. 선이 글자를 읽게 한다면 이 여백은 작품의 멋을 창출하는 공간이다. 글자의 선이 뿜어내는 감정과 글자 내부 공간과 어울리는 또 하나의 특별한 주체다. 이 여백은 작품의 품격을 좌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 觀山三昧(관산삼매)/ 산 바라기 삼매에 빠지다.
선의 정감과 대소 강약, 여백의 미를 강조한 작품이다.
2015년 인재 손인식 작
 
골프장엔 여백이 많다. 드넓은 필드만 여백이 아니다. 해저드나 벙커, 심지어 OB 지역, 원근의 풍경까지 다양한 여백이 있다. 그 여백들은 골퍼에게 여유를 안기고 다른 한편으론 긴장감도 유발한다. 서예에 여백이 없다면 곧 선의 예술이 성립되지 않는다. 골프장의 여백은 라운딩을 더욱 살아있게 한다. 여백이 곧 실제고 실제가 곧 여백이다. 서예나 골프, 여백이 곧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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