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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23)|그녀는 왜 여왕으로 불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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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775회 작성일 2018-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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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손인식의 경영 탐문 23
 
그녀는 왜 여왕으로 불리는가?
 
- 공자영 회장, 신용과 억척으로 자신의 공화국을 이루다 -
 
하루 일정을 마친 가이드가 훌쩍이며 들어왔다. 생글거리는 평소 모습이 아니다. 여행사 대표께서 물었다. 손님에게 야단을 맞았다 했다. 투어 중 대한민국 애국가를 부르는데 손님이 중지시키고 호통을 쳤다 했다. 전에 애국가를 불렀을 때 요란한 박수와 함께 팁을 듬뿍 받은 것과는 영판 달랐다.
 
“그니까 머리를 써야지. 손님들 나름 흥이 절정인데 느닷없이 애국가를 부르면 어떡해? 니가 잘 부르는 찬송가도 다 손님과 때를 잘 맞춰 불러야 하는 거야.”
 
인도네시아 바탐섬의 가이드 이야기다. 바탐을 여행한 분들이라면 좀 별난 인도네시아인 가이드를 만났을 것이다. 한국의 애국가를 처연하게 부르는가 하면 찬송가도 감칠맛 나게 부르는 인도네시아인 가이드. 경상도 사투리가 아주 자연스러운 인도네시아인 관광 안내원. 그들은 모두 설운도, 조용팔, 갑돌이 등 외우기 쉽고 희화적인 한국식 이름을 가졌다. 한국노래 2~30여 곡을 가사 안 보고 구수하게 뽑는 정도에 말솜씨까지 코미디언 수준이다. 선생을 잘 만난 덕이다.
 
그들의 한국어와 사투리 솜씨는 한국인이 놀랄 수준이다. 사투리도 선생 덕이다. 출신이 경상도인 여행사 대표의 한국어 교육 때문이다. 선생으로서 자기 말이 포준(표준)어가 아니라고 밝히기 참 거시기한 때문이다. 제자들은 안다. 표준어 방송도 봤다. 표준어를 쓰는 여행객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고치지 않는다. 맛깔난 사투리가 때에 따라 손님의 박장대소, 그리고 두둑한 팁으로 연결되는걸 뭐.
 
억척 하나로 공화국을 개척한 여인
 
바탐(Batam) 공화국 여왕! 공자영(54), 먼저 그녀 이름 앞에 여왕 작위를 놓는다. 이쯤 작위여야 그녀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급이 어울리겠으므로. 그녀는 현재 인도네시아 바탐섬, 빈탄섬을 무대로 여행사(PT. INKO BATAM)와 3개의 음식점, 작은 쇼핑센터, 환전소를 운영 중이다. 바탐 한인회장도 세 번째(5, 6, 7대) 맡고 있다. 자력으로 <바탐 한국문화원>을 설립해 운영한다. 현지인에게는 한국 문화를, 한국인에게는 인도네시아 문화를 펼친다.
 
‘능력자’ 그녀에게 딱 맞는 말이 능력자다. 커리우먼 보다 더 적격이다. 그 바탕에 그녀의 억척스러움이 있다. 억척스럽다는 말엔 대게 ‘모진 태도’가 따른다. 그러나 그녀의 억척스러움엔 모진 것이 없다. 지혜와 통찰력이 단연 도드라진다. 그러니까 그녀의 억척스러움이야말로 참다운 억척스러움이다. 그녀는 그 억척스러움으로 스스로 개척한 공화국을 즐겁게 경영한다.
 
▲ 바탐 공화국 여왕으로 불리는 공자영 회장
 
“여행사 직원이 한국인 5명 포함 80여 명이에요. 차량 20여 대가 한 달 평균 관광객 5천여 명과 더불어 바탐섬, 빈탄섬 구석구석을 누비죠. 오직 목표가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입니다. 대형 식당 3개를 운영하는 것도 같은 목적입니다. 작은 쇼핑센터를 인수해 직영하기 시작한 것도 흔한 관광지 폭리나 부실 상품을 근절하기 위해섭니다. 이런 부분이 바로 경쟁력 강화더라고요.”
 
바탐은 인도네시아 경제특구다. 위치가 싱가포르 남쪽이다. 싱가포르에서 페리로 1시간 미만에 닿는 거리다. 말레이시아도 바다 너머로 확연히 건너다뵈는 곳이다. 소속은 인도네시아지만 인접한 싱가포르 영향이 매우 큰 곳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인 것도 바탐의 특징이다.
 
바탐의 인구는 약 130만을 헤아린다. 말레이계(85%)와 중국계(14%), 그리고 섬 전체에 고르게 분포된 토착 라우트 족(Orang Laut) 포함이다. 인도네시아 타 지역보다 인건비가 높지만, 깨끗하고 치안이 좋아 외국인이 살기엔 좋은 도시로 평가받는다. 골프 투어에도 최적의 환경이다. 호텔과 골프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서비스 좋은 곳으로 정평 난 곳도 바탐이다.
 
“27년 전 제게 바탐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이었어요. 계기가 있어 6개월여 체류 목적으로 바탐에 발을 디뎠습니다. 90년대 초 한국에 해외여행 붐이 일었잖아요? 이곳 바탐에도 싱가포르 경유 한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죠. 바탐에서 처음 한 일이 현지인 가이드 한국어 교육이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천직을 얻었지요. 지금은 한국보다 더 편하고 애정이 가는 삶터가 되었고요.^~^ ”
 
개척의 시작, 한국어 가르치기
 
그녀는 여행업이 뭔지 몰랐다. 페리, 골프장, 호텔, 여행사를 소유한 화교 회사에 들어간 것도 단순 취직이었다. 가이드 한국어 교육하는 사이 호기심으로 조금씩 여행 업무에 관여한 것이 이젠 바탐섬과 빈탄섬 여행에 관한한 토털 서비스 달인이 되었다.
 
“어려움 많았어요. 회사에서 제 존재감이 커질수록 총수의 친인척들과 화교 매니저들의 견제와 텃세가 심해졌죠. 모함도 서슴지 않았고요, 그럴수록 열심히 일했지요. 단 하루를 쉬지 않은 해도 있어요. 오너도 거래처도 제 능력과 성실함을 알아줬지요. 4년 만에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계열 여행사 사장이 됐습니다. 운영 5년여 즈음에 바탐 최고의 여행사로 성장했고요. 물론 계열사의 페리와 골프장, 호텔 매출에도 공헌했습니다.
 
근무 10년이 됐을 즈음 IMF가 터졌어요. 싱가포르 주재 한국 여행사들의 악성 미수금이 핫한 현실로 떠올랐죠. 모회사와 한국 파트 독립을 합의했습니다. 지금의 여행사 인코바탐이 탄생한 거죠. 그때 저는 모기업의 손실을 최소화해야겠다고 맘 먹었어요. 미수금 약 80만 달러를 제가 3년에 걸쳐 나눠 갚기로 했습니다. 물론 의무 사항이 아니었어요. 10년을 함께한 도의일 뿐. 분가에 동참한 직원 및 가이드 약 50여 명도 퇴직금 포기 각서를 쓰게 했어요. 설득에 앞서 저부터 포기 각서를 썼고요."
 
독립 초기 어려움이 꼬리를 물었다. 모기업에 갚기로 한 미수금이 가장 큰 짐이었다. 자금 회전이 어려웠다. 쓰나미와 발리 테러 등 크고 작은 자연재해도 어려움을 부추겼다. 가장 힘 빠지게 하는 것은 몇몇 한국 거래처의 배신이었다. 미수를 갚지 않고 피했다. 업체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바탐에 여행사를 끌어들여 덤핑도 일삼았다. 직원과 가이드에게 갖은 유혹을 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았다. 눈 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신의없는 행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바탐의 호텔을 비롯한 관련 협력사들은 오히려 옥석을 가리는 기회였다. 그는 저가 유혹을 물리치고 지금까지도 모기업 페리를 이용하며 의리를 지키고 있다.
 
요즘엔 인도네시아인들 한국 보내는 아웃바운드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인도네시아 전체 아웃바운드 최고를 꿈꾸고 있다. 여건도 좋다. 인니 정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에서 여행 관계자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중국 위주에서 동남아 여행 시장에 눈을 돌린 한국으로서도 좋은 계기다. 덕분에 전년에는 특별 주간을 설정 주 4회 한국 전세기를 2개월간 허용했다. 전에 없던 일이다. 여기엔 공화국 여왕의 노력과 역할이 지대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관광청 차관 일행과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인니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관광 박람회에 고위공무원이 참여한 것이죠. 10일간 그들의 입과 발이 되어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간 10년을 민간차원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했었거든요. 이번에는 차원이 조금 달랐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관광 자원을 집중 홍보했어요.”
 
▲ 인도네시아 관광청 차관(사진 중앙)과 한국 방문 중
 
▲ 아웃바운드 첫 결실 바탐인들의 경남 방문
 
▲ 한국에서 열린 관광 박람회에 참석 인기 만점이었던 소속 가이드 설운도, 감돌이와 함께
 
최근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는 한국행 비자 신청이 부쩍 늘었다. 하루에 무려 1천 2백 건에 이른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 과열 경쟁이다. 차제에 여왕께선 홀 세일러 역할에 적극적이다. 인도네시아 여행사들의 컨소시엄을 형성을 지시했다. 과열 경쟁 방지를 위해서다. 비자발급에도 협력하고, 수준 있는 한국의 여행사를 선정 연결했다. 덤핑을 막고 한국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의지다. 그 시작이 부산 경남 여행 상품이었다. 첫 팀 40명 한국여행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영어, 한국어에 능통한 그녀 여행사 소속 가이드들의 맹활약도 펼쳐졌다.
 
그녀는 왜 여왕으로 불리나
 
그에게 ‘바탐 공화국의 여왕’이라 칭한 사람은 필자만이 아니다. 바탐 한인들이 먼저다. 그의 사무실은 바탐의 사랑방이다. 투자나 회사 설립에 관한 자문부터 비자 관계, 사건 사고 해결까지 도움 요청이 줄을 잇는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대사관 영사 업무까지 해야 할 때도 있다. 심지어 가정부나 기사를 구해달라는 부탁도 잦다. 현지 많은 단체의 스폰서 요청도 그칠 새가 없다. 한국회사 취업 요청, 한국 상품 구매상담 등 그야말로 바쁜 여왕이다.
 
▲ ▼ ▼ 공자영 회장이 주도한 다양한 행사들 
 
 
 
한국인 여행객이 호텔에 두고 온 귀중한 물품을 되찾은 것도, 싱가포르행 페리의 출항을 늦출 수 있는 것도 그녀가 있기에 가능하다. 비자 문제로 입출국에 문제가 생긴 교민들과 여행객을 일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돕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통관하기 까다로운 교민들과 바탐 진출업체 물품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순조롭다.
 
“왜 업무 방해가 안 되겠어요. 귀찮을 때도 있고 금전적인 손해가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러나 제 노력과 인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에 보람도 많이 느껴요. 지금은 대부분 한인회 이름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바탐 한인회 존재감과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서죠.”
 
▲ ▼ ▼  바탐 한인회 활동
 
 
 
놀라운 것은 그녀 명함의 위력이다. 명함 한 장이면 주유소에서 외상으로 기름을 준다. 웬만한 위반에는 교통경찰이나 이민국 직원들도 눈을 감는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인도네시아 적이고 매우 바탐적이다. 악용된 적도 있다. 그녀의 명함으로 술 마시고 식사한 사실을 여행객이 떠난 뒤에야 안 때도 있다. 바쁜 업무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있으면 지나가던 차가 몇 대씩이나 선다. 그의 차를 알아보는 현지지인들이다. 뭘 도와줄까 묻는다. 이런 영향력을 경험한 여행객들, 어찌 그녀를 바탐 공화국 여왕이라 칭하지 않으랴.
 
“바탐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페리가 멈춰선 때부터 마음이 푸근합니다. 특히 제 고국 한국에 가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버스 기사에게 만 원짜리 냈다가 야단을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녜요. 길을 묻는데 위아래를 훑는 사람도 있어요. 바탐에선 사람을 마주치면 서로가 미소를 짓거든요. 한국에서 그랬더니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며 가더라고요.”
 
그녀는 매월 관광객 5~7천 명을 싱가포르 바탐 간 페리에 태운다. 페리회사가 그녀 앞에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영구 무료 페리 탑승권 제공도 경쟁적이다. 싱가폴 바탐간 페리 시간과 노선을 협의하는 것은 기본이다. 관광객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는 바탐 관광청에서도 그녀의 동향은 늘 관심사다. 그녀가 싱가포르나 한국을 다녀올 때면 이민국 간부가 나와서 커피 한잔 나누자고 이끈다. 여행 관련 수많은 업종과 종사자에게도 그녀는 말 그대로 여왕 아니랴.
 
무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
 
“제가 27년 바탐인입니다. 살면서 한순간도 잊지 않은 것이 신용입니다. 한국인과 현지인 모두에게 신용을 잃으면 일하기 힘듭니다. 물론 제 신용은 혼자 이룬 것이 아닙니다. 직원들의 힘이 절대적이죠. 80여 명의 직원 중 90%가 15년 이상 함께 동고동락했습니다. 이직률 제로에 가깝습니다. 쉴 사이 없는 것이 여행업의 특징이지만, 이슬람 대 명절에도 대부분이 자진 출근합니다. 그 땜에 악덕 업주로 오해도 받습니다. 그뿐인가요? 직원들 눈치 보여 저 또한 골프도 휴가도 거의 못갑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직원들은 그냥 믿고 사랑하는 가족인 거다. 그의 얼굴에 드러난 넘치는 자부심이 거저 얻어진 것이랴. 세상엔 공짜 없다. 그는 15년 동안 지급해야 할 돈에 대해서는 한 번도 미룬 적이 없다고 했다. 변수가 많은 여행업계 아닌가. 자연재해나 불경기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무급 휴가나 감원 감봉하는 게 통례다. 그러나 그는 한결같았다. 은행 대출을 해서라도 직원들 월급과 거래처 결재를 단 한 번 기일을 넘기지 않았다.
 
無信不立(무신불립), 공자의 말이다. 논어 안연편 구절이다.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 정치나 사회 개인 등 관계가 있는 곳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하다. 의리도 믿음에서 생겨난다. 특히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데는 믿음이 바로 서야 한다. 신의, 이는 바탐 공화국 여왕에겐 성공의 다른 말이다.
 
▲ 無信不立(무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 논어 안연편 구
2018, 무술년 단오 후 7일 인재 손인식 작
 
한인회장 직책도 연임에 또 연임이다. 거듭 사양에도 바탐의 한인들이 믿고 맡겼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친화력으로 작지만, 모범 한인회로 이끌기 때문이다. 자비로 출범한 한인 문화센터는 취임 시 공약이행이었다. 지금은 현지인들의 한국어반, 태권도반이 인기다. 교민들을 위한 인도네시아어 반도 운영한다. 여기엔 한국 선교사들의 도움이 크다. 특히 태권도반은 인기가 많다. 장소가 좁아 3개 반을 나눠 진행한다. 작년에는 인도 국제대회에 3명이 처음 출전해 금,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 ▼ ▼ 태권도 후원 활동
 
 
 
“한국 관광객 성향요? 다 인정하듯 인정이 많아요. 인도네시아인들의 친절하고 순수한 면을 참 좋아하세요. 어려운 시기를 겪은 향수 때문인지 열심히 일하는 현지인에게 팁도 많이 주시고요. 당연히 인기가 좋지요. 그런데 아닐 때도 더러 있어요. 한국 국가경제 수준이나 국가 브랜드에 일부 여행자의 질이 못 미쳐요. 돈이면 다 된다는 의식 버려야 해요. 기본 룰은 좀 지켰으면 좋겠어요. 특히 술 주정이나, GNP가 낮다고 얕보는 행동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싱가포르에선 안 하는 행동이 왜 바탐에선 스스럼없이 나올까요?”
 
무한, 그녀의 일 즐기기
 
“저는 한마디로 일이 취밉니다. 틈이 나면 음악을 듣고 한국에 가면 꼭 뮤지컬을 관람하지만, 평소에는 그냥 일이 취미예요. 때가 되면 직원들에게 모두 맡길 겁니다. 카메라 매고 인도네시아 전역을 돌 계획이죠. 하지만 지금은 일이 우선입니다. 일로 생기는 스트레스도 일로 풀어요. 집보다 사무실이 더 편합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를 사랑한다. 자연과 음식, 문화도 좋아 한다. 27년여를 부대끼다 보니 사람들과도 정이 듬뿍 들었다. 장학금과 각종 성금도 마음으로 나눈다. 상생할 방법도 늘 모색한다. 현지 태권도협회 후원도 이에 다름 아니다. 바탐에 자생적 태권도 인구가 어림잡아 2천 명, 교양과목으로 태권도를 채택한 학교도 있다. 태권도학과 신설과, 태권도 종주국 한국방문 등 다 그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의 다양한 활동은 곧 한국 이미지 제고다. 내용 좋은 민간 가교다. 바탐 공항과 그의 여행사 간 MOU 체결이야말로 큰 상징이다. 그는 요즘 한국항공 유치를 위해 양측을 오가기 바쁘다. 매 방학이면 특별기를 띄우고 2년여 후면 정기편이 가능할 것으로 점친다. 바탐 정부에서도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는 업무적으론 실패 사례가 거의 없다고 했다. 우려하는 것이 따로 있다. 금전 손실이다. 흔한 말로 돈을 떼이는 거다. 그것도 대부분 한국인과 거래나 관계에서다. 하여 끝으로 여왕께 감히 사뢴다. “화이부동(和而不同), 남과 조화롭게 지내되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 말라.”는 그의 선조 공자의 깨우침을 궤하에 놓는다. 아울러 바탐 공화국 여왕의 무운을 빈다.
 
 
※ 이 프로젝트는 <자카르타경제신문>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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