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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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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673회 작성일 2018-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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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시,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출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작과비평)
 
 
NOTE******************
무슨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설렁탕에 소금을 많이 풀어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말하는 어머니와 참고 있던 눈물을 땀인 냥 훔쳐내며 왜 눈물은 짠가 중얼거리는 아들의 마음이 한꺼번에 다가와 가슴을 울린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도시에서 자랐건, 시골에서 살았건, 누구에게나 어머니와 관련된 가슴 아린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시인은 가난 때문에 어머니와 헤어져 살아야 했던 한 시절의 이야기를 짠 눈물을 삼키며 시로 써내려 갔다. 
 
설날이다. 고향을 떠나와 사는 우리들에게 명절마다 떠오르는 같은 얼굴이 있다면 아마도 어머니가 아닐까. 이번 설날에도 어머니 얼굴을 뵙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이국에서 제사 상을 차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어머니의 얼굴은 짠 눈물과 겹쳐 떠오른다. 설렁탕 국물을 덜어주는 어머니, 조기를 발라 숟가락 위에 얹어주는 어머니, 새벽 기도마다 자식들의 이름만 부르는 어머니, 장성한 아들에게 숨겨둔 쌈짓돈을 꺼내 주는 어머니, 김치 통을 들고 시외버스를 타는 어머니…….. 모든 어머니들의 눈물이 있어서, 우리는 그나마 제 사는 곳에서 짠맛을 잃지 않는 인간으로 살려고 몸부림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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