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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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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1건 조회 7,751회 작성일 2017-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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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밥
                     시.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출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작과 비평사 1996년)
 
NOTE ********
20여년 전에 나온 함민복 시인의 세 번째 시집 94쪽에 나오는 시다. 시집이 나오고 몇 년 후에 한국을 떠나왔으니, 참 오랜 세월 동안 내 책장을 지키고 있는 시집이다. 형광펜으로 줄을 그은 문장들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에도 여전히 시인들은 가난하다. 시 한 편의 원고료는 그때보다 그다지 오르지도 않았고 시집을 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이름 뒤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뒤늦게 등단을 해서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아직도 자신을 시 쓰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도 부끄럽고 어디서 시인이라고 불리는 것도 민망하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것은 계절마다 빠짐없이 문예지에 시를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인데, 지금도 시 원고료는 대부분 몇 권의 책으로 대신하거나 20년 전보다 별 달라지지 않은 원고료를 받는다. 그러니 생활고를 견디며 평생을 바쳐 시를 써 온 시인들의 이름을 들으면 그저 숙연하고 존경스럽다. 시인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싶다. 함민복 시인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강화도 어딘가에서 인삼을 팔며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가난하고, 착하고, 심성이 여린, 천상 시인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때로 너무 착한 것은 딱하다. 나는 속물에 가까운 사람이어서 시인의 가난이 그저 안타깝고 때로 화가 나기도 하지만, 함민복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서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자리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가다듬는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카피라이터, 라디오 작가,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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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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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님의 댓글

추적자 작성일

저도 대학시절  창비 시집들을 끼고 다니면서 시도때도 없이 읽고, 또 토론했던 때가 있었네요!  지금도 책장에 꽂혀있는 함민복 시집을 여기서 보게되니 반갑고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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