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명퇴는 있어도 은퇴는 없다 / 엄재석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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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6) 명퇴는 있어도 은퇴는 없다 / 엄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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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873회 작성일 2018-08-15 14:13

본문

< 수필산책 16 >
 
명퇴는 있어도 은퇴는 없다.
 
엄재석 / 문협인니지부 부회장
 
 
명퇴는 명예 퇴직의 줄인 말이다. 말이 좋아서 명예 퇴직이지 직장에서 정년이 되기 전에 능력이 부족하거나 실적이 없는 고참 직원을 강제로 내보내는 제도이다. 약간의 위로금을 주면서 어려운 회사와 커가는 후배를 위하여 용단을 내려 달라고 설득한다. 한 평생을 보낸 직장이 효율성과 성과를 앞세워 당사자는 원치 않지만 강제로 내보내는 퇴직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치욕 중에 치욕이요 불명예 중에서 불명예 퇴직이 명퇴이다. 아니 도대체 50살 전 후의 나이에 회사를 나가서 무엇을 하라고? 다달이 들어오던 월급이 없어지면 이제 한창 크는 아이들 학비는 어쩌라고…. 한 평생 남편만 믿고 살아온 아내에게 뭐라고 설명하며 다음 날부터 어디 가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나? 굴지의 회사의 000부장님이라 불리며 명함도 내보이고 밥 먹고 나서 법인 카드로 결재했던, 그 권력(?)과도 작별을 해야 한다. 20~30년간 회사에서 갈고 닦은 전문성은 사라지고 당구장을 하거나 아파트 수위로 가는 것이 대부분 퇴직 후의 행로이다.
 
그렇기에 한 해를 마감하는 겨울에는 모든 직장인들은 초조해진다. 욱일승천하는 기세 속에 실적을 남긴 회사원들은 승진에 대한 기대감으로 초조해지지만 정년에 가까운 고참 직장인들은 남다르다. 내년에도 이 자리에 남아 있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연말을 맞는다.그리하여 일부러 상사의 눈을 피하거나 일거리도 없으면 바쁜 척한다. 수완이 좋은 일부는 손바닥에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상사에 아부를 하기도 한다. 직장인으로 가장 두렵고 죽기 보다 더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명퇴이다. 이런 명퇴를 내가 당해야 했다, 바로 10년 전 그 때가 G건설에서 일하던 2008년이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연말연시였다.
 
전라남도 보성과 순천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현장에 근무하던 중 본사의 담당 임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 9시까지 본사에서 만납시다” 그 해의 실적을 따져 보니 회사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여서희미하게 예상은 했지만 막상 전화를 받고 나니 심장이 떨려 왔다. “이렇게 나도 명퇴자가 되는구나 ”50이 넘은 나이에 현장의 소장도 아니고 비 주간사에서 나온 퇴물 부장으로 자리만 차지하며 일년을 버틴 나로서 때가 왔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지내 온 세월인가? 갖은 수모와 치욕 속에고진감래라고 참고 견디면 기회가 온다는 신념으로 버틴 세월이었는데 성과도 없이 끝나고 말다니 ……아쉬웠지만 구차스럽지 않게 임원이 내민 사직서에 사인을 하였다.
 
그렇다고 세상이 무너지리.  G건설을 나오자 마자 이전부터 나의 합류를 원했던 지인의 회사로 바로 나갔다. H건설이란 중소 건설 회사에서 마치 명퇴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도 쉬지 않고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하였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커다란 조직의 일부로 편하게 일하던 때를 잊고 회사의 성장을 위하여 몸으로 뛰어야 했다. 건설공사가 발주되면 대형 회사의 영업담당 임직원을 찾아서 공동도급의 보조 회사로 끼워 달라는 것이 나의 주 업무였다. 말이 쉬워서 영업이지 실제는 구걸이나 다름없는 일로 실적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도 여기서는 오래 갈 줄 알았는데 2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사장실로 부르더니 이제는 그만 두란다. 처음에 왔을 때 한 “죽을 때까지 같이 가자”는 약속은 어디로 가고 나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 알이 되고 제 2의 명퇴를 당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적도 열대의 나라 인도네시아로 왔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국의 직장에서도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지난 주에는 처음으로 공사를 수주하였다. 지난 2년간 수주영업활동에서 별다른 실적도 없던 무위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영업 전문가에게 로또보다 낮다는 공사수주에 성공하고 계약서에 사인까지 하였다. A4 규격의 계약서 말미에 나의 사인을 남기면서 지난 10년간 풍상고초가 뇌리 속에 되살아 났다. 그렇다고 공사 한 건 계약했다고 나의 업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일뿐이다. 또 다른 도전을 위하여 다음 날에는 보고르의 찌곰봉 리조트 현장의 흙 먼지를 마셔야 했고 쓰레기 위생 매립장에서 현지인 공사 관계자를 만나야 했다.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한번의 실수가 있고 추락도 있을 수 있다. 직장생활에서 승진도 있지만 명퇴도 있다. 문제는 거기서 다시 일어서느냐 아니면 주저 앉느냐다. 나는 포기하고 좌절하고 주저앉을 수 없었다. 명퇴라는 미명하에 내보낸 조직과 임원들을 위해서라도 더 뛰어야 했고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희는 내쳤지만 나는 일어섰다. 나에게 명퇴는 있어도 은퇴란 없다”라는 것을. 이렇듯 적도에서 만들어 가는 나의 제 2의 삶은 이야기한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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