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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38) 글투 운동 하실래요?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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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582회 작성일 2019-01-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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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38 >
 
글투 운동 하실래요?
 
이영미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지난 2018년은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나도 말한다)으로 세계가 뜨거웠다. 2006년 미국의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자국의 소수인종 여성과 아동들을 격려하기 위해 생각해낸 아이디어 미투 운동, 생가지에는 불이 잘 붙지 않듯이 이 운동도 십여 년간 겨우 연기만 피우다 2017년 후반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인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 파문이 시발점이 되어 한국의 문학과 영화, 사기업 등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었다. 몇몇 유명인들이 ‘거물’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성폭력 가해자’라는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사회 약자를 보호한다는 ‘짜릿한 정의’에도 부작용이 뒤따른다. 거짓 폭로와 가해자나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비난과 마녀사냥식의 재판과 악의에 찬 허위신고로 무고한 피해자의 양산이 그것이다. 사회 약자가 겪는 고통과 추문으로 얼룩진 왕좌에서 끌어내린 강자의 고통이 거울의 양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화자의 입장이다.
즉, ‘끝장내 보자’는 식의 판결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도덕적인 경고’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그 선이 어디까지라고 묻는다면, 그들 마음 속에 얼음송곳처럼 박힌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눈 녹듯이 사라질 때까지! 인력의 힘으로 봄바람을 불러내려면 돌에도 꽃이 피도록 정성이 지극해야 하지 않을까?
 
 
 
미투 운동이 촉발된 지 1년 뒤 대한민국은 ‘빚투 운동’으로 또 한 번 들썩였다.
유명인 본인이나 가족이 과거에 사기를 치거나 돈을 변상하지 않은 어두운 과거가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가족이 저지른 일로 유명인들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활동의 제재를 받으며 적극적으로 채무가 해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미투 운동과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아닌 가족에게 채권 추심을 하는 것은 불법 추심에 해당한다는 법적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졸린 눈을 비비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밤 열두 시를 넘기는 일이 예사인데, 그때는 자정이라는 시간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타종 행사를 직접 보러 가는 것도 아니면서, 눈을 부릅뜨고 텔레비전을 지켜봤던 것은 새해에 대한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33번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마치 내 가슴에 찍히는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 어린이처럼, 마법 할머니가 걸어준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오전 영 시의 제야의 종소리 마법이 풀렸음에도 내가 기대한 것은 군밤처럼 따끈하거나 “다시 뛰는 대한민국”이라는 힘찬 표어였다.
 
이런 기대를 꺾고 스포츠계의 미투 기사가 각종 신문의 앞면을 차지했다. 권력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이의 몸과 마음을 함부로 유용해도 된다는 저급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는 증거다. 돈이 있으면 죄를 면하고, 돈이 없으면 죄를 뒤집어쓴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현상’과 ‘유력무죄, 무력유죄(有力無罪 無錢有罪)’의 논리의 옷이 잘 어울리는 우리나라. 씁쓸한 일이다. 스포츠계 미투를 촉발시킨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와 스포츠계의 강압적인 운영과 성폭력을 용기 있는 고백 한 분들이 겪은 아픔이 희석되는 소식이 들리길 바란다.
 
 
 
일련의 O투 운동들을 지켜보며 다음에는 어떤 O투 운동이 사회의 이슈가 될까, 생각해 보았다. ‘글투 운동(I Read and Write Too Movement)’은 어떨까? 많이 읽고 많이 쓰자는 흐뭇한 운동이다. 2017년 말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독서 인구는 전 국민의 절반 수준이다. 독서 인구의 평균 독서량은 전년도에 비해 한 권 늘어난 17.3권이며 어려운 경제를 반영하며 교양서적과 직업 서적, 잡지, 취미정보 서적에 집중되어 있다. 아, 독서 시장에서 순수문학은 어디메뇨? ﹡
 
 
☞ 2019년 첫 글투의 시작
- 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서미숙 회장의 저서 「적도의 노래」
 
 
얼어붙은 문학계를 한탄하기보다는 나부터 한 자라도 더 쓰고 읽기로 결심해 본다. 일주일에 한 편씩 죽이 되든 떡이 되든 써보리라! 이런 나의 결심은 겨우 2주가 지난 지금 흔들리고 있지만, 그 불꽃이 꺼지지는 않을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먼저 2019년 첫 스타트로 자카르타경제신문 '수필산책' 코너의 귀한 지면을 빌려 “2019년에는 글투 하시죠!”를 외쳐 보았다. 내일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야겠다.
 
“글투 하실래요?”
 
 
*만고강산(萬古江山) 판소리 단가의 시작 부분. 중모리 장단에 맞추어 부르며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이 어디메뇨”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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